작품소개

와토의 <키테라섬으로의 출항>, 로코코 회화의 시작을 알린 명화

클래식아트 2025. 5. 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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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코코 미술의 시작을 알린 와토의 명작 <키테라섬으로의 출항>! 사랑, 환상, 쓸쓸함이 교차하는 이 그림 속 숨은 상징과 이야기를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절대왕정이 막을 내리고 궁정의 권력이 귀족 사회로 흘러가던 18세기 초 프랑스의 예술은 이전과는 다른 감성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장 앙투안 와토의 <키테라섬으로의 출항 L’Embarquement pour Cythère>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는 작품으로, 화려하면서도 덧없는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며 당대 미술계의 기준을 바꾸고, 로코코 회화의 문을 열었습니다.

 

  와토가 고안한 페트 갈랑트(Fête Galante)는 세련된 옷차림을 한 귀족들이 자연에서 춤추고 마시면서 대화하는 것을 묘사한 장르입니다. '페트'는 축제를, 갈랑트'는 우아한 태도를 의미하는데 '정중한, 상냥한, 고상한' 등의 뜻도 있습니다. 페트 갈랑트에는 지나친 쾌락에 대한 경고나 경건한 삶을 요구하는 교훈은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저 이렇게 우아하고 고상하게 즐길 수 있는 삶을 향한 행복하고 낙천적인 감성만 있을 뿐입니다. 쉽게 말해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서 서민들의 먹고 마시고 떠드는 일상이 자주 그려진 풍속화의 귀족판이라 할 수 있지요.

 

  와토(1684-1721)가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이 되기 위해 <키테라섬으로의 출항>를 출품한 것은 이례적이었습니다. 당시 아카데미는 영웅적, 종교적, 역사적 주제(grande peinture, 역사화)를 선호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카데미는 1717년 와토의 입회를 계기로 페트 갈랑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설하며 그를 받아들였는데, 이는 매우 특별한 케이스였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로코코 회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했고, 귀족들의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취향이 미술계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키테라섬으로의 출항이란 작품을 보여주는 이미지
1717년,  캔버스에 유화, 129×194cm,  루브르 박물관

 

  키테라(Cythera)는 그리스 신화에서 비너스가 태어난 곳입니다. 비너스가 키테라 해안으로 밀려온 바닷물의 거품에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곳은 '사랑의 섬'이 되었지요. <키테라섬으로의 출항>이란 제목대로 해석하면, 연인들이 사랑의 섬 키테라를 향해 여정을 시작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하지만 사랑의 섬에 있던 연인들이 키테라를 떠나 '현실 세계'로 귀향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림 전체에서 느껴지는 다소 우울한 분위기를 반영한 해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목처럼 키테라로 출발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네요. 사랑을 위해 떠나는 일은 분명 설레는 일이지만, 동시에 남겨진 현실과 여행에 대한 불안이 반영되어 작품 전체에 어딘가 쓸쓸한 정서도 배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와토가 명확한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그저 모호한 형태나 형체만을 그려 넣은 곳도 많은데, 이는 사랑이 확실한 것이 아니기에 그런 것이라는 것과 잘 연결되는 것 같아 인상적입니다.

 

  이제 그림을 세부적으로 살펴볼까요?

  화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세 커플은 마치 영화의 필름 컷처럼 연속적인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커플은 앉아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고, 중간 커플은 막 자리에서 일어났으며, 첫 번째 커플은 배를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러나 여인은 여전히 뒤를 돌아보며 미련을 보입니다.

 

  그림 속에서는 사랑을 나누기 위해 떠나는 커플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푸티(Putti, 푸토의 복수형으로 라틴어로 '작은 사람'이라는 뜻)도 그려져 있습니다. 푸티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에서 등장했던 아기 천사 또는 사랑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랑과 욕망을 나타내는 역할을 합니다. 푸토는 장난꾸러기처럼 커플들을 이별하게 하려는 듯, 사랑의 화살을 거꾸로 쏘려 합니다.

 

  살아 있는 조각상 비너스는 아들 큐피드와 함께 등장합니다. 발치에는 수금, 무기, 책이 무심히 흩어져 있는데, 이는 예술, 전쟁, 학문을 상징합니다. 한 푸토가 그녀에게 월계수 화환을 둘러줍니다. 이것은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Amor Vincit Omnia)”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한 남자가 숲에서 장미를 꺾어 연인에게 건네주고 있습니다. 장미는 사랑의 꽃으로 비너스에게 성스러운 의미를 지니는 꽃입니다.

 

  한 여인은 부채를 만지작거리고 있네요. 부채를 쥐고 움직이는 동작은 연인들 사이에서 비밀스러운 의사소통 수단이었습니다.

 

  푸티와 인간들이 연출하는 억압되지 않은 자유로운 분위기는 나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과 부드럽게 퍼지는 하늘은 연극 무대의 배경처럼 펼쳐지며 환상적인 공간과 현실을 분리하고 있습니다.

 

  와토의 <키테라섬으로의 출항>은 단순히 우아한 옷차림과 사랑스러운 분위기만을 담은 그림이 아닙니다. 이 작품 속에는 사랑의 시작과 끝, 환희와 쓸쓸함,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있습니다. 인생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을 시처럼 표현한 이 그림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조용한 감동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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