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세잔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The Card Players> ”피카소와 마티스를 낳은 현대 미술의 시작!“
세잔의 명작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을 통해 현대 미술의 시초를 살펴봅니다. 단순한 구도, 정지된 시간 속에서 긴장감을 표현한 이 작품은 피카소와 마티스, 추상 미술에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폴 세잔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은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의 한 부유한 은행가의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반대로 좋아하는 미술 공부를 할 수 없었지만, 파리에서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발전시켜나갔지요. 하지만 당시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인상파조차도 세잔의 독특한 표현 방식은 쉽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세잔은 50대 중반까지도 크게 주목받지 못한 채 “실패한 화가”로 자괴감 속에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1890~1895년, 그는 도박을 연상시키는 카드놀이를 주제로 한 작품 다섯 점을 그리게 됩니다. 이 주제는 고향 엑상프로방스 미술관에서 본 17세기 네덜란드 장르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카드놀이하는 사람들(The Card Players) 시리즈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시리즈 중 4점은 각각 필라델피아의 반즈 재단,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런던 코톨드 미술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있고, 나머지 한 점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어요. 마지막 거래는 2011년에 있었는데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그리스의 선박 재벌 게오르규 엠비리코스(George Embiricos)가 카타르의 석유 재벌에게 판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거래 금액은 2억 5,900만 달러(환화 당시 약 2,900억 원 이상) 입니다.
처음 그린 두 점은 세 명의 카드 플레이어와 구경꾼들이 등장하고, 배경도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세 작품에서는 두 명의 플레이어만 남기고 불필요한 배경과 인물은 과감히 생략됩니다.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두 사람만 남기고 주변 인물이나 배경을 모두 생략해 주제와 구성을 단순화했습니다. 가장 마지막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는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 작품이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작품분석
그림 속의 인물은 구경꾼이 사라지고 카드놀이하는 두 사람 뿐입니다. 오직 손에 들린 패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배경도 단순하게 처리되었는데, 거친 터치로, 여러 가지 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문인지 창문인지 벽인지 벽지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알 수 없다는 것은 추상화되었다는 뜻입니다. 색상도 형태도 모호하고 시간도 공간도 불분명합니다. 얼핏 보면 사물을 평면화한 화면, 세부가 무시된 형태, 물감을 바르다 만 수채화 같은 색채 등으로 미완성 작품처럼 보입니다.
화면은 테이블 중앙에 놓여 있는 와인병을 기준으로 정확한 좌우 대칭 구도가 형성됩니다. 서로 마주 앉은 두 남자의 휘어진 팔, 모인 손, 수직의 몸통이 화면을 수직·수평으로 나누며 시각적 안정감을 줍니다. 그 속에서 팽팽한 침묵의 긴장감이 흐릅니다. 그러나 카드를 손에 쥐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돕니다. 마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과 실행의 순간에 처한 듯, 그 모습이 사뭇 진지하고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승부는 이미 결정이 난 듯 왼쪽 남자의 패가 훨씬 밝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얼핏 보면 도박하는 사람들 같지만, 와인병 병마개가 닫힌 것으로 보아 그들은 술도 마시지 않았고, 테이블 위에 판돈도 없습니다. 아마도 돈이 아닌 자존심이나 명예를 걸고 맞붙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후대에 끼친 영향
이 작품을 통해 화가들은 여러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의 양복과 얼굴 컬러를 보면서 야수주의(Fauvism) 화가들은 색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다양한 시점에서 그려진 사과 정물들을 보면서 입체주의(Cubism) 화가들은 새로운 착상을 떠올렸습니다. 그의 거친 붓터치로 인해 모호해진 사물들을 보면서 후배 화가들은 추상의 개념을 떠올렸습니다.
그 결과 피카소의 입체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마티스의 야수주의가 탄생하는 배경이 되었고, 현대 미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추상 미술(Abstract Art)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폴 세잔은 카드놀이를 주제로 한 그림은 인간 정물화라는 평을 들으며 이후 〈사과와 오렌지>, <목욕하는 사람들> 등 현대 미술의 요소를 드러내는 말년 대표작들의 초석이 됩니다. 그 이후 세잔은 대상을 재구성하고 더 단순화한 말년의 걸작들을 쏟아내며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