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의 "미스테리 결혼식인가, 추모식인가?"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Arnolfini Portrait>은 부유한 상인 아르놀피니를 위해 그린 그림입니다. 이 작품은 극도로 사실적인 묘사뿐만 아니라, 그림 속 다양한 사물에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 |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1434년, 82x60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5~1441)는 화가이자 외교관으로도 활동했기에 남긴 작품은 많지 않지만, 그의 영향력은 막대했습니다. 그는 기존의 템페라 물감이 아닌, 안료에 기름을 섞어 만든 유화 물감을 개발하여 사진처럼 정밀하고 섬세한 표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 그림 역시 크지 않은 화폭에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면서, 결혼과 관련된 수많은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그림 속 공간은 부부의 침실입니다. 두 남녀는 손을 맞잡고 정면을 향해 서 있습니다. 남자는 맹세하듯 오른손을 들었고, 그들 앞에는 귀여운 강아지와 나막신이 놓여 있습니다. 바닥에 벗어둔 신발은 이곳이 신성한 공간임을 의미합니다.
그림 곳곳에는 부부의 부유함이 드러나 있습니다. 값비싼 모피로 장식된 옷, 정교한 황동 샹들리에, 볼록 거울, 바닥의 오리엔탈 카펫, 그리고 당시에는 매우 귀한 과일이었던 오렌지 등은 그들의 높은 사회적 지위와 부를 과시합니다. 하지만 이 부유한 남녀가 누구인지에 따라 그림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해석 1: 이것은 결혼 서약식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해석은 이 그림이 조반니 디 아리고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 조반나 체나미의 결혼 서약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그림 속 상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단 하나의 촛불 : 결혼을 축복하고 모든 것을 지켜보는 신의 존재를 상징합니다.
- 강아지 : 부부간의 충실함과 정절을 의미합니다.
- 침대 기둥 조각상 : 출산과 임산부의 수호성인인 성 마르가리타로, 다산과 순산을 기원합니다.
- 오렌지 : 부와 다산을 상징하는 값비싼 과일입니다.
- 수정 묵주 : 신앙심과 순결을 상징합니다.
*참고: 여성의 배가 불러 보이는 것은 임신이 아니라, 당시 유행했던 풍성한 드레스 스타일입니다.
해석 2: 죽은 아내를 위한 추모화이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림 속 인물은 조반니 디 니콜라오 아르놀피니이며, 그의 첫 번째 아내 코스탄자 트렌타는 그림이 그려지기 1년 전인 1433년에 사망했습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이 그림은 남편이 죽은 아내를 추모하기 위해 주문한 것입니다.
![]() |
샹들리에 부분 확대 |
이 해석의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샹들리에를 자세히 보면, 살아있는 남편 쪽의 초는 불타고 있지만 죽은 아내 쪽의 초는 꺼져 있습니다. 또한 샹들리에 아래 볼록 거울 주변에는 예수의 수난 장면 10개가 그려져 있는데, 예수가 살아있는 장면은 남편 쪽에, 예수가 죽고 부활하는 장면은 아내 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림 속 또 다른 비밀: 화가의 서명
이 그림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중앙의 볼록 거울입니다. 거울 안에는 아르놀피니 부부의 뒷모습뿐만 아니라, 문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남자가 보입니다.
![]() |
거울 부분 확대 |
이 두 사람은 누구일까요? 거울 바로 위 벽에는 라틴어로 “Johannes de eyck fuit hic. 1434” (얀 반 에이크 이곳에 있었다. 1434년) 라는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서명이 아니라, 화가 자신이 이 사건의 '증인'으로서 현장에 있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즉, 거울 속 두 사람 중 한 명은 바로 화가 자신인 셈입니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사진 같은 정밀한 묘사와 수많은 상징으로 가득합니다. 그 의미가 결혼 서약인지, 죽은 아내를 향한 사랑의 추모인지 여전히 알쏭달쏭합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그림을 보며 더 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됩니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