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가의 <머리빗기 Combing the Hair> '발레리나의 화가' 또는 '여성의 화가'로 불리웠던 프랑스의 화가 드가의 <머리 빗기>라는 작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드가(Edgar Degas, 1834-1917)는 발레를 소개로 한 그림을 많이 남겼지만 그의 관심대상은 사람이었습니다. 크게 인상주의로 분류되고, 인상주의 화가들과 친했고, 풍경화가 대세를 이루었던 시대에 활동하면서도 그의 관심은 사람이었습니다.
고야의 <카를로스 4세 가족의 초상 Charles IV of Spain and His Family> 스페인의 대표화가 중 한 사람인 고야는 궁중화가로서 국왕 카를로스 4세의 가족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일반적인 왕실 초상화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세기 초반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Jose de Goya y Lucientes, 1746~1828)가 궁정화가로 활동했던 스페인에서는 왕이 네 번이나 교체되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초기 궁정화가 시절 고야는 왕가의 화려함을 로코코적으로
프란스 할스의 <웃고 있는 기사 Laughing Cavalier> 이번에는 네덜란드에서 유명한 초상화 화가였던 프란스 할스의 <웃고 있는 기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안트베르펜에서 태어나 하를럼에서 활동한 할스(Frans Hals, 1580-1666년)는 렘브란트 이전 네덜란드 최고의 초상화가였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도 않았고 가정적으로도 행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할스는 아무런 데생 없이 캔버스에 곧바로 그리기 시작하여 인물의 자연스러운 표정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존 에버렛 밀레이의 <마리아나 Mariana> 셰익스피어의 연극에 영감을 받아 <마리아나>라는 시가 탄생하였고, 그 시에 영감을 받은 밀레이는 <마리아나>라는 그림을 남겼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영감을 주게 될지 기대가 되지 않으세요? 섬세한 기법과 색채의 마법으로 유명한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는 어릴 때부터 천재적인 그림 실력을 드러내었습니다. 그가 9살 때 어머니가
렘브란트의 <사도 바울풍의 자화상 Self portrait as the Apostle Paul> 빛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는 명성과 부를 누리던 젊은 시절부터, 주변의 관심을 잃고 가난에 시달린 노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의 자화상은 70-80여 점으로 추정될 뿐이지 위작이 많아 정확한 작품 수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화법을 연구하기 위해 모델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는 자신의 다양한
아르침볼도의 <채소를 기르는 정원사 L’Ortolano> 16세기를 뛰어넘는 놀라운 창의성을 보여준 이탈리아 출신 아르침볼도의 <채소를 기르는 정원사 L’Ortolano>라는 작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밀라노에서 태어난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1526~1593)는 프라하에서 27년 동안 막시밀리안 2세(1527~1576)와 루돌프 2세(1552~1612) 아래서 궁정화가로 일했습니다. 궁정화가의 주요 업무는 왕실 가족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인데,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키스 Il Bacio> (faet. 1895, 1861, 1867년 작) 사랑하는 연인이 키스를 통해 깊은 사랑을 나누는 것 같지만 그 이상의 깊은 의미가 담겨지 있는 하예즈의 대표작 키스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키스를 하는 명화가 많이 있지만 이탈리아인들은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키스 Il Bacio를 가장 좋아하여 1위로 선정했습니다. 얼핏 보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하는 연인이 키스를 하는 로맨틱한 장면으로 보이지만,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