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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루이스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Les Demoiselles d'Avignon>

클래식아트 2025.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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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피카소(Pablo Picaso, 1881~1973)의 <아비뇽의 처녀들>입니다. 이 작품은 입체주의가 시작된 첫 작품입니다.

 

피카소의 &lt;아비뇽의 처녀들&gt;이란 그림을 보여주는 이미지
<아비뇽의 처녀들> 1907년, 243.9 X 233.7cm, 뉴욕 현대미술관(MoMA)

 

  이 그림은 어디까지가 여자 몸이고, 어디부터가 배경인지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어떤 여자는 옆모습인데 어떤 여자는 정면입니다. 얼굴도 아프리카 가면 조각 같은 형태이며 목은 아예 없습니다. 한 사람의 얼굴 안에서도 눈은 정면인데 코는 옆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특히 그림 오른쪽 귀퉁이의 여인은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데 목을 180도 꺾어 관람자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다섯 명의 인체는 마치 종이를 오려 붙인 듯 부피감 없이 평면적인데, 배경도 빈 공간이 아니라 조각조각 제멋대로 깨어진 유리 조각처럼 여러 개의 단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품 배경

 - 피카소와 파리의 예술적 배경

1900년대 초 파리는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새로운 예술적 표현을 탐구하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예술적 틀을 벗어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강했던 피카소는 세잔의 영향을 많이 받아 하나의 시점에 종속되지 않고 다양한 시점을 도입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 아프리카 조각과 원시주의

당시 만국박람회를 통해 프랑스에 소개된 아프리카 조각과 이베리아 조각의 영향을 받아 원시주의(Primitivism)의 영향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 입체주의의 태동

입체주의(Cubism)가 시작된 첫 작품으로 원근법을 찾아보기 어렵고 깊이와 공간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특히 여인들을 여러 시점에서 동시에 바라본 듯한 기법을 사용하였으며 몸도 입체감이 없이 평평하고 각이 진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주제와 구성

  이 작품은 바르셀로나의 매춘가 거리인 '칼레 아비뇽'을 배경으로 5명의 매춘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피카소는 이 작품을 통해 당시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며, 성적 욕망과 그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을 시각적으로 나타내었습니다. 아프리카 조각과 이베리아 조각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 속 인물들의 얼굴을 통해 원시적 본능과 감정을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5명의 매춘부들은 서로 다른 포즈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시점에서 관찰된 것처럼 보이며, 기존의 원근법을 무시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형태는 왜곡되고 다각화되어 있으며, 색상은 주로 강한 대비를 이루는 원색을 사용하여 시각적인 충격을 줍니다. 평면적인 구성으로 인물들이 서로 겹쳐지며 공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합니다. 이는 입체주의의 특징 중 하나로, 하나의 그림에 여러 시점을 동시에 표현하려는 것입니다. 피카소는 대담한 선과 형태를 사용하여 인물들의 특징을 강조합니다.

 

영향과 반응

  1907년 이 그림을 완성한 피카소는 가까운 친구들을 작업실로 초대했습니다. 작품을 본 친구들의 반응은 모두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림을 보는 동안 모멸감이 느껴질 뿐 아니라 혐오스러운 작품이라고 이야기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알몸을 드러낸 여인들의 눈길을 마주한 친구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함께 입체주의를 추구한 친구 조르주 브라크 마저 혹평했습니다.

 

  충격을 받은 피카소는 이 작품을 자신의 작업실에 두었다가 9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다시 세상에 이 작품을 선보였을 때 비평가들이나 동료 예술가들에게도 강판 비판과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입체주의(Cubism)를 발전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미술 기법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을 보여주며, 현대 미술의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피카소의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정신은 이후 많은 예술가들이 기존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창의성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해석과 의미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기존의 예술적 규범을 깨뜨리고 새로운 표현 방식을 탐구하며,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관념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고자 했습니다.

 

  이런 해석의 실마리는 작품 한가운데 아래쪽에 놓여 있는 과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달콤한 과일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고 썩게 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욕망과 닮은 점입니다. 그 짧은 달콤함을 맛보기 위해 아비뇽 골목을 찾았던 사람들 가운데 성병으로 죽어나가는 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죽음과 맞바꾼 쾌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피카소는 ‘인간 욕망의 덧없음’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맨 왼쪽 여성의 머리 위로 커튼을 젖히고 있는 손은 이 여성들을 통해 돈을 버는 포주의 손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아비뇽의 처녀들>이라는 제목은 피카소가 지은 것이 아닙니다. 피카소는 원래 이 그림의 작품명을 <아비뇽의 창녀들>이라고 지었는데, 이 작품의 전시회를 주관했던 프랑스 시인이자 비평가 앙드레 살몽이 대중의 반응을 고려하여 <아비뇽의 처녀들>이라고 조금 순화시켜 부르게 된 것이 널리 사용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피카소는 여전히 <아비뇽의 창녀들>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전통적인 미술의 규범을 깨뜨리고, 새로운 표현 방식을 탐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피카소는 인물의 형태를 분해하고 재구성하여 다각적인 시각을 한 화면에 담아냈습니다. 이 작품은 예술가들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창의성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오늘날 현대 미술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뉴욕 현대미술관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았던 피카소는 이 작품을 가지고 있다가 1924년 패션 디자이너 자크 두세에게 약 3만 프랑에 판매했습니다. 피카소는 자신의 작품이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기를 원했는데 그가 자신의 사후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하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크 두세가 죽은 후, 이 작품은 개인 딜러에게 팔려나갔고, 뉴욕 현대미술관의 초대 관장 알프레드 바(Alfred H. Barr, Jr., 1902-1981)는 드가(Edgar Degas, 1834-1917)의 작품을 팔아 마련한 돈에 웃돈까지 얹어 이 그림을 2만 4천 달러에 구매했습니다. 알프레드 바의 뛰어난 안목과 수집 열정, 과감한 실행력과 후원을 끌어내는 능력으로 뉴욕 현대미술관은 세계 현대 미술의 1번지로 우뚝 올라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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