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지난 포스팅에서는 베르메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을 소개해 드렸는데, 이번에는 그의 또다른 대표작으로 전 세계 미술애호가들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고, 관람객으로 하여금 실재 소녀가 앞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는 렘브란트, 프란스 할스와 함께 네덜란드의 17세기를 대표하는 국보급 화가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여관을 운영하며 여러 작품을 남겼습니다. 주로 여성을 주제로 한 일상적인 가정생활의 모습과 고향 델프트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무척 세심하고 꼼꼼한 성격의 베르메르는 빛의 효과를 세밀하게 관찰한 이후 끊임없는 덧칠과 수정을 통해 완벽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런지 남겨진 작품도 40점도 되지 않습니다.
베르메르가 33세 때 그린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로 불릴 정도로 유명해 매년 40만 명 이상이 이 작품을 보기 위해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림 속의 소녀는 옷깃이 높은 노란 옷차림에 머리에는 이슬람풍의 푸른 터번을 쓰고 있습니다. 왼쪽 어깨 쪽으로 얼굴을 살짝 돌려 관람객과 시선을 마주치고 있습니다. 소녀의 왼쪽 귀에는 제법 커다란 진주 귀고리를 하고 있습니다. 하얀 얼굴에 예쁜 코와 입술, 커다란 눈망울이 매력적으로 보이네요. 그런데 특이한 것은 눈썹과 속눈썹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소녀가 웃는 것인지는 눈꼬리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베르메르는 의도적으로 눈꼬리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한쪽은 그리지 않았고 한쪽은 그림자로 교묘히 가려버렸네요.
또한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얼굴에 담고 있는 신비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그림속의 여성의 정체도 아직 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다 빈치의 <모나리자>와 비교가 되었고, ‘북구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이지요.
베르메르는 주로 역사화나 풍속화를 뒷배경과 조화를 치밀할 정도로 완벽히 구현하는 화가인데, 이 작품의 뒷배경은 그냥 까맣게 칠해놓았습니다. 소녀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면서 그녀의 얼굴을 비추며 타고 흐르는 듯한 미묘한 빛의 처리가 신비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베르메르는 네덜란드의 부자들을 대상으로 이 그림을 제작했기 때문에 당시 돈 많은 부유층이 선호하는 고가의 사치품을 그려 넣었습니다. 소녀가 착용하고 있는 우아한 진주 귀고리는 유리구슬에 물고기 비늘을 칠한 모조품으로 추정되고, 소녀가 입은 노란 옷은 당시 네덜란드가 국제 교역이 활발했던 덕분에 유행하였던 일본스타일의 옷입니다. 그리고 머리에 쓴 푸른색 터키풍의 터번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건너온 것입니다.
또한 베르메르는 이 작품을 위해서 금보다도 비싼 물감을 아낌없이 사용했습니다. 파란색의 재료로는 청금석을 사용했는데, 이 청금석이 아프가니스탄의 어느 광산에서만 소량 생산되는 귀한 재료였습니다. 파란색을 ‘울트라마린’이라고 불렀는데, 물 건너 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중세 시대 파란색은 예수님의 옷이나 성모 마리아의 옷 색깔처럼 중요하고 가장 고귀한 대상을 그릴 때만 사용했습니다.
하얀 진주는 순결함과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또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에 신부를 위한 예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베르메르는 소녀를 성모처럼 순결하고 신성한 존재, 혹은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운 존재로 보여주려고 했던 겉 같습니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제목은 20세기 후반에 붙여진 것입니다. 그 전에는 <터번을 쓴 소녀>, <터키 옷을 입은 트로니> 등으로 불렸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트로니(Tronie)는 특징적인 의상이나 분장을 한 인물을 묘사한 가슴 높이의 초상화를 뜻합니다. 이 작품 역시 화가의 상상력을 통하여 그려진 이국적인 앳된 소녀는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어 소설과 영화까지 탄생시켰습니다.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누구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베르메르의 장녀라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할 유력한 증거는 없습니다. 1999년 미국의 여류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쓴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가 출간되고, 이를 토대로 2003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림 속의 소녀가 베르메르 집의 하녀로 알고 있는데, 이는 소설가의 상상일 뿐이지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림의 모델이 화가의 하녀라는 설정은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이라는 것에 격하게 공감이 됩니다.
영화 <진수 귀걸이를 한 소녀>에 대하여는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