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의 키스 The kiss
아르누보(Art Nouveau, 새로운 미술) 스타일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키스>는 다른 화가들에게서 볼 수 없던 풍부한 상상력과 자신만의 독창성을 잘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이 작품은 1908년 빈에서 열린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하는 미술 전시회에 주요 작품으로 출품되었습니다. 당시 클림트는 전시 위원장까지 맡으며 열여섯 점이나 달하는 작품을 출품하다 보니 물리적 시간이 모자라 결국 메인 작품 <키스>를 미완성인 상태로 내보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 에서는 이작품을 약 4억 원에 매입하였고, 클림트는 전시회가 끝난 다음 해에 완성본을 납품하였습니다.
클림트는 빈분리파를 결성하여 초대회장을 맡았습니다. 분리파란 말 그대로 틀에 박힌 전통 미술이나 상류 사회와 부유층 취향으로 분리되어 독립적인 예술 세계를 추구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독창적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여성을 주로 모델로 삼아 에로티시즘을 탐구하여 비난도 쏟아졌습니다. 1905년 클림트는 8년 동안 활동했던 분리파를 갑자기 떠난 이후 홀로 개인 작업에 몰두합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접했던 고전 벽화의 양식, 최고의 건축장식가로서 구축해 온 섬세한 표현 양식, 그리고 에로티스즘에 몰두하며 추구한 순수한 아름다움 등을 모두 녹여내어 그의 대표작들이 만들어지는데 그중에 하나가 <키스>입니다.
먼저 이 그림은 황금처럼 찬란하게 빛이 납니다. 연인들의 얼굴과 손, 발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클림트는 여성의 관능적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도구로 황금 장식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값비싼 금가루와 은박 재료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1) 어린시절 귀금속 세공업자였던 아버지의 영향, (2) 1903년 이탈리아 북부 도시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을 방문했을 때 보았던 화려한 황금을 사용해 그린 비잔틴 시대 모자이크 기법의 작품, (3) 빈의 공예 학교에서의 수업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클림트는 화려한 황금 장식 기법을 사용하여 키스가 단지 육체적인 행위가 아니라 황홀하고 고귀한 감정이며 동시에 관능적인 요소가 들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그림 속의 서로 포옹하며 얽혀 있는 연인은 사랑의 키스를 하려고 합니다. 두 사사람은 화려한 금으로 된 옷으로 휘감겨 있는데, 이것은 두 사람의 결합과 함께 그들이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남자는 머리숱이 많고 검은 곱슬머리에 담쟁이 덩굴 화관을 쓰고 있어 마치 고대 그리스의 신 디오니소스 같습니다. 여자는 키스하기 위해 머리를 기울이고 있는데, 꽃으로 수놓은 듯한 붉은 갈색 머리카락은 그녀의 머리를 마치 후광처럼 감싸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무릎을 꿇고 있는 여자가 일어선다면 그녀의 키는 남자의 키 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두 연인의 옷은 장식적이면서도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의 옷은 강인한 남성을 상징하는 직사각형 모양과 기하학적 도형으로 장식했고, 여자의 옷은 부드러운 여성을 상징하는 곡선, 동심원 문양, 화려한 꽃과 식물 문양으로 장식했어요.
두 사람은 아름답고 화려한 색채의 꽃밭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지만 여자의 발은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언덕의 끝에 위태롭게 걸쳐져 있는 것 같습니다. 연인은 꽃으로 뒤덮인 절벽 위에 있는데, 이 절벽은 여자의 바로 뒤로 떨어지고, 여자의 발은 금으로 된 절벽의 끝에 걸쳐져 있습니다.
클림트가 개발한 황금 장식 기법 그림은 오스트리아 상류층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그의 그림 속 모델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 속의 여자는 누구일까요? <키스>라는 제목은 후대에 붙여진 것이고 원래의 제목은 <연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남자는 클림트 자신을 표현한 것이고, 여자는 클림트가 사랑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클림트는 평생 <키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두 명의 여성을 유력한 후보로 추측합니다. 한 명은 부유한 사업가 페르디난트 블로흐 바우어의 아내인 아델레(Adele Bloch-Bauer)와 또다른 한 명은 에밀리 플뢰게(Emile Floege)입니다.
두 여자 모두 자신이 그림 속의 모델이라고 주장을 했지만 여러 정황들을 살펴보면 에밀리 플뢰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에밀리는 원래 클림트의 동생 에른스트의 처제로 두 사람은 사돈관계였으나 에른스트가 죽은 이후 클림트가 생계를 책임지면서 자연스레 두 사람은 27년 간 특별한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클림트는 580여 통의 편지를 남겼는데 , 그중 400여 통이 에밀리에게 보낸 것이었고,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 지며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에밀리를 불러와!"였으며, 유언장에도 자신의 재산 절반을 에밀리에게 남겼다고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에밀리라고 추정하는 근거는 클림트와 에밀리가 함께 찍은 사진에서 에밀리의 키가 약간 클림트 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ㅎㅎ
참고적으로 클림트는 모델이 되어주었던 여성들과 육체적 관계를 가졌고, 클림트가 아버지라고 소송을 제기한 사람이 14명에 이를 정도로 많은 염문을 뿌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법적으로는 독신이었고, 단 한 명도 자신의 아들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