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홀바인 <대사들 The Ambassadors>
서양 최고의 초상화가 한스 홀바인(Has Holbein the Younger. 1497년경-1543)은 독일 출신이지만 영국에서 궁정화가로 활동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의 성상파괴의 여파로 작품 주문이 줄게 되자 그는 에라스무스의 추천장을 들고 영국으로 건너갑니다. 영국도 종교개혁이 움트고 있었지만 프로테스탄트를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목적에서 가톨릭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헨리 8세가 스페인 출신의 왕비 캐서린과의 이혼을 교황청에 청원했는데 거절 당하자 로마 가톨릭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겠다고 선언한 상황이었습니다. 교황청은 당시 막강했던 스페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정치적 상황 가운데 가톨릭 국가였던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1494~1547)가 중재를 하기 위해 잉글랜드의 헨리 8세에게 대사들을 보냅니다. 홀바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두 사람이 바로 영국을 방문한 대사들입니다.
그림 속의 두 사람은 초록 커튼을 배경으로 진귀한 물건들이 얹어진 선반을 사이에 두고 서 있습니다. 왼쪽에 서 있는 남자는 장 드 딘트빌(Jean de Dinteville)입니다. 붉은 실크에 검은 벨벳의 상의, 긴 모피 옷은 그의 부유함과 높은 지위를 보여줍니다. 목에는 그가 속한 성 미카엘 기사단의 펜던트를 걸고, 손에는 장식이 화려한 단검을 들고 있습니다. 단검에 새겨진 라틴어는 당시 딘트빌의 나이가 29세였음을 알려줍니다.
오른쪽 남자는 성직자 조르주 드 셀브(Georges de Selve)입니다. 그는 수수하게 보이지만 비싼 소재인 비단과 모피로 된 성직자 의상을 입고 있습니다. 그가 팔을 올려 놓은 책을 통해 그의 나이가 25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셀브는 딘트빌에 비해 상대적으로 눈에 덜 들어오며, 서 있는 위치도 딘트빌에 비해 약간 뒤쪽입니다. 이를 통해 두 인물 중 주인공은 딘트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딘트빌이 영국 체류가 길어져 피로, 우울증, 질병에 시달리고 있던 가운데 셀브가 방문하자 큰 위로를 얻게 됩니다.
딘트빌은 이 그림을 프랑스 트루아 근처의 대저택에 걸기 위해 의뢰했습니다. 그가 의뢰인이였기에 당연히 그를 주인공으로 그려져야 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팔꿈치를 대고 있는 2단 선반(whatnot)이 있는데, 거기에는 다양한 사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여러 물건들이 호기심을 자극하네요. 이것들에 상징과 암시가 담겨 있는데, 이것을 알레고리(allegory)화라 합니다.
선반의 위쪽 터키산 양탄자 위에는 과학적 기구들이 놓여 있습니다. 맨 왼쪽부터 천체를 묘사한 혼천의, 4월 11일을 가리키고 있는 작은 원기둥 모양의 실린더식 달력, 사분원호(Qundrant), 다면체 모양의 해시계,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는 간의가 놓여있습니다. 즉 하늘을 관측하기 당대 최고의 천문학 기구들입니다. 이는 두 사람의 학식 수준을 알려줍니다.
아래 선반의 맨 왼쪽에는 지구본에는 유럽이 중심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딘트빌의 성지가 있었던 트루아 근처의 폴리지(policy)를 의도적으로 표기하였다는 것입니다. 의뢰인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그랬겠지요.
그 아래쪽에는 수학책이 더 큰 책은 독일어로 쓰인 루터교의 찬송가입니다. ‘성령이여 오소서'와 '십계명'을 보여주는데, 이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모두 공유하는 믿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악기는 류트인데 자세히 보면 한 개의 현이 끊어져 있습니다. 음악은 하모니를 상징하는데, 선이 하나 끊겼다는 것은 바로 조화가 깨졌음을 암시합니다. 조금 전에 언급한 수학책은 나눗셈 부분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렇다면 영국과 교황청의 분열, 신교와 구교의 갈등을 상징합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의 바닥은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중세 시대 모자이크 바닥 무늬와 동일합니다.
그림의 왼쪽 상단을 보면 커튼 뒤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조각상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그들의 모든 것을 살피시고 인도하고 있다는 의미와 동시에 신앙적인 삶을 살도록 경고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달력의 날짜가 4월 11일이란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1533년 4월 11일은 성금요일 시간은 오후 4시입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종교적인 의미와 철학적 통찰이 담긴 상징은 해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골은 좌우를 길게 늘여 왜곡된 원근법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약 2미터 떨어진 위치에서 비스듬히 바라보면 이 형상은 해골로 보인다고 합니다. 이렇게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만 볼 수 있도록 한 기법을 아나모르포시스(Anamotosis, 왜상기법)라고 합니다. 서양에서 해골은 죽음의 상징으로 그려졌는데,와 권세를 가졌다할지라도 예외 없이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주고 있습니다.
그림 속에는 또다른 해골이 있습니다. 딘트빌의 모자에 그려져 있네요. 그가 죽음을 기억하고 살았던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던 것일까요?
그림의 세부적인 부분을 확대하여 살펴보았더니 정확한 묘사를 위해 세밀하게 그려진 그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의 높이와 폭이 각각 2미티 정도로 매우 컸다는 사실을 깜빡했더군요. ㅎㅎ
결과적으로 프랑수아 1세가 보낸 대사들의 임무수행은 실패했습니다. 교회의 분열을 막지 못해 유럽이 분열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부, 권력, 지식 등은 덧없는 것이기에 죽음을 생각하는 겸허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임무수행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 같네요.
'작품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 밥티스트 그뢰즈의 <기타 연주자 The Guitarist(The Guitar Player)> (0) | 2025.02.19 |
---|---|
프리드리히의 <창가의 여인 Woman at a Window> (0) | 2025.02.19 |
베르트 모리조 <요람 The Cradle> (0) | 2025.02.19 |
호아킨 소로야의 <바닷가 산책 Strolling along the Seashore> (0) | 2025.02.19 |
마네 <폴리 베르제르 술집 A Bar at the Folies-Bergère> (0) | 2025.02.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