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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인가, 불경인가? 엘 그레코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El Espolio>

클래식아트 2025.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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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 그레코가 그린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이란 작품은 불경한 작품일까요? 신성한 작품일까요? 이 작품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는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고야와 더불어 스페인의 3대 화가로 불리지만 그는 크레타섬 태생의 그리스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톨레도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수많은 명작을 남겼고, 결국 스페인의 3대 화가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본명은 '도미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인데 너무 길어 그를 ‘그리스 사람'이라는 뜻으로 ‘엘 그레코'라고 불렀습니다. 

  엘 그레코가 스페인으로 건너간 이유는 교황 앞에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자리에 더 훌륭한 그림을 그리겠다는 말로 인하여 그는 더 이상 일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도 국왕 펠리페 2세의 신임을 받지 못해 스페인의 옛 수도인 톨레도로 향합니다. 톨레도에서 1577년 엘 그레코는 톨레도 대성당 성구실(Sacristy) 제단 뒤편에 걸릴 제단화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를 그리게 됩니다. 

 

엘 그레코의 &lt;그리스도의 옷을 벗김&gt;이란 작품을 보여주는 이미지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1577-79년, 285 x 173cm, 스페인 톨레도 대성당



  작품을 완성한 후 엘 그레코는 작품 가격으로 900 두카트를 요구했습니다. 대성당 측 감정인들은 227 두카트로 평가했습니다. 결국 그는 소송을 거쳐 350 두카트만 받게 되었습니다. 900 두카트는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왜 이렇게 적은 금액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일단 이 그림의 주제가 문제였습니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옷이 벗겨졌다는 명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로마 군사들이 예수의 옷을 차지하기 위해 제비를 뽑았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당시 화가들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그리는 것과 달랐습니다. 

 예수의 위치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림의 중앙에 있지만 군중들이 예수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예수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톨레도 대성당의 성직자들 이런 구성에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이 작품에 성모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가 등장하는 것도 논란거리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예수의 옷이 벗겨지는 현장에 세 명의 마리아가 함께 있었다는 언급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모의 시선이 목수를 향하고 있다는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또한 예수의 옷이 붉은색으로 표현된 것이 종교적 경건함을 떨어뜨린다는 점과 예수의 좌측에 있는 군사와 군중들 뒤쪽에 있는 군사들이 16세기 갑옷을 입고 있다는 것도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오랜 기간 동안 저평가되었습니다. 19세기 낭만주의, 상징주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등장하면서 개성과 감정을 강조하는 것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이 작품은 엘 그레코의 혁신적이고 선구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재평가되었습니다. 혁신적인 구도, 강렬한 색채, 인물의 감정 표현 등이 작품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요소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또한 이 작품에 대한 가톨릭의 평가도 달라졌습니다. 현재 수많은 순례객과 관광객들이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대성당을 방문합니다. 대성당 측에서도 이 작품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2014년 엘 그레코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여 바티칸 박물관에서 엘 그레코의 특별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필자는 군중들이 예수를 내려다보이는 구도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왜냐하면 이런 구도는 고난과 멸시를 당하는 예수를 확실하게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 그레코의 시도는 예수의 존엄성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을 위해 모욕을 당하신 예수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엘 그레코의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은 전통을 뛰어넘는 혁신적 예술로, 인간의 고통과 신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대를 초월한 감동과 영감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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