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 그림으로 본 이미지 정치
나폴레옹은 자신의 영웅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그림을 잘 활용했던 사람입니다. 이런 그림을 잘 그렸던 화가는 자크 루이 다브드입니다.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정확한 작품명은 <생 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 Bonaparte franchissant le Grand-Saint-Bernard>이자만 알프스를 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나폴레옹의 의뢰로 제작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Calme sur un cheval fougueux”, 즉 격렬하게 날뛰는 말 위에서 침착한 모습으로 자신의 리더십을 보이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나폴레옹을 이상적인 영웅의 이미지로 부각시키는 정치적인 선전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역사화는 살롱전에 전시되어 많은 대중에게 노출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선전 수단이 되었지요.
어린 시절 친구네 집에 이 그림이 벽에 걸려 있었는데, 필자의 눈에도 나폴레옹은 영웅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오랫동안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분석하고 해설하게 되면서, 철저하게 계산된 정치적 선전(PROPAGANDA)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는 프랑스 혁명기에 나폴레옹을 영웅화하는 많은 그림을 제작했습니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 완성된 다음 해인 1802년 나폴레옹은 다비드에게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고, 1804년 황제의 수석 화가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나폴레옹 전성기에 그려진 것으로 장엄한 서사와 영웅적 이미지를 강조합니다. 다비드는 1800년 5월, 오스트리아군을 기습하기 위해 알프스를 넘던 나폴레옹을 애국심에 불타는 젊고 잘생긴 장군의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푸른색, 흰색, 금색 직물로 장식된 화려한 군복을 입은 나폴레옹은, 회백색 아라비아산 종마 '마렝고'를 타고 험준한 산을 향해 나아갑니다. 물론 실제로는 노새를 타고 조용히 행군했지만요.
나폴레옹의 상체를 휘감은 붉은 망토는 거센 폭풍우 속에서 펄럭이며, 그림 전체에 역동성을 불어넣습니다. 그날의 실제 날씨는 맑았지만, 다비드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위해 흐리고 폭풍우 치는 장면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그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으며, 오른손을 들어 저 너머의 고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마치 저 너머에는 승리가 있다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 하네요.
배경에는 프랑스 군대가 대포를 끌고 이동하는 모습과 함께, 바람에 휘날리는 프랑스 삼색기(푸른색, 흰색, 빨간색, 프랑스혁명과 공화주의의 이념을 상징)가 보이네요. 그림의 왼쪽 아래 바위에는 ‘BONAPARTE’, 'HANNIBAL', 'KAROLUS MAGNUS'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네요. 이는 나폴레옹을 한니발과 샤를마뉴 대제와 같은 역사적 영웅들과 나란히 놓으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전체 구도는 Z자 형태로 매우 역동적입니다. 앞다리를 치켜든 말, 바람에 휘날리는 망토와 꼬리, 대각선으로 구성된 산자락이 모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바람을 가르며 휘날리는 붉은 망토는 이 그림의 역동성을 세련되게 강조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반면 나폴레옹이 몰락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 그려진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 1797-1856)의 비슷한 크기의 같은 주제의 그림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 작품에서 나폴레옹은 우아한 장군이라기보다 추위에 떨며 현실을 견뎌내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는 화려한 군복 대신 두꺼운 회색 모직 외투를 입고 있으며, 백마가 아닌 갈색 노새를 타고 눈 덮인 알프스를 넘고 있습니다. 어둡고 칙칙한 색상, 백마가 아닌 갈색의 노새, 눈으로 덮인 척박한 배경의 작품은 다비드의 영웅적 그림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줍니다.
다비드의 작품은 나폴레옹을 묘사한 수많은 초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히지만, 동시에 과장된 연극적 설정이 지나쳐 예술성보다는 선전 목적에 충실했다는 평가도 함께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예술이 어떻게 권력과 결탁해 이미지를 생산하고 역사를 구성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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