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르 브뤼헐의 <염세가 The Misanthrope>
16세기 사회를 풍자한 피터르 브뤼헐의 <염세가 Misantropo>라는 작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네덜란드 태생의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de Oude, 1525-1509)은 브라반트 공국의 화가로,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그는 태어난 마을 이름을 따 성을 삼았으며, 1551년 안트베르펀의 화가 조합에 가입한 후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유학했습니다. 브뤼헐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그림을 그렸는데, 그중에서도 풍속화와 농민 생활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유명합니다. 특히 브뤼헐은 죽기 1년 전에 풍자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당시 네덜란드는 그들의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죠. 16세기 후반 네덜란드는 유럽의 최강국이었던 스페인의 식민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이런 혼란한 시대에 브뤼헐은 권력자들과 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그림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나폴리 카포디몬테 미술관에는 브뤼헐의 사회적 풍자를 담은 작품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죽기 1년 전에 그린 <염세가 The Misanthrope(인간간혐오)>입니다. 길고 흰 수염을 가진 한 노인이 검은 망토를 입고 걷고 있습니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어 바로 앞에 있는 가시를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둑질하는 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인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듯 경건해 보이지만 사실은 위선일 뿐입니다. 망토 뒤로 하트 모양의 두툼한 돈주머니가 튀어나온 것이 보이네요. 노인의 뒤에서는 맨발의 젊은 남자는 노인의 돈주머니를 훔치려 하고 있습니다.
망토를 쓴 노인은 세상의 혼란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염세주의자입니다. 하지만 두툼한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니 돈에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발 앞에 있는 가시는 걸어갈 길 역시 험난한 것임을 암시합니다. 가시를 밟기도 전에 벌써 노인은 그의 재산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노인의 돈주머머니를 움치려는 남자는 투명한 원형 안에 갇혀 있는 것 같군요. 이 원형에는 십자가가 달려있네요. 아마 기독교인이지만 그도 역시 탐욕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세계를 버리고 싶어도 그의 행동이 세상을 떠날 수 없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속세에 있습니다. 또한 신앙이 있어도 돈에는 욕심을 부리는 인간의 부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두 사람의 뒤쪽에 보이는 언덕에는 양치기가 양을 돌보고 있습니다. 양치기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평범한 양치치가 더 책임감 있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네요.
이 그림의 아래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습니다.
“Om dat de werelt is soe ongetru Daer om gha ic in den ru”
“세상이 너무 기만스럽기 때문에 나는 슬퍼할 것이다"라는 뜻인데, 브뤼헐의 눈에 비친 신뢰하기 힘든 세상에 대한 고뇌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림을 통해 사회를 비판했던 브뤼헐은 죽기 직전에 자신이 그린 많은 작품들을 불태워 없애버렸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그림 때문에 가족들이 화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브뤼헐의 두 아들도 화가였는데, 그의 아들 피터르(Pieter Bruegel the Younger)는 아버지가 그린 <염세가>를 모방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작품을 비교해 보면서 감사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풍자적인 요소와 종교적 상징을 조합하여 그림 속 인물들의 복잡한 내면을 표현하고 있는 <염세가 The Misanthrope>이란 작품이 어떤가요? 우리 시대의 사람들의 복잡한 내면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