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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성화 묵상 #2 기를란다요의 <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

클래식아트 2025.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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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주간에는 유월절 만찬을 빼놓을 수가 없기에 두 번째 성화묵상으로 이탈리아 화가 기를란다요의 <최후의 만찬>를 소개합니다.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 1448-1494)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최후의 만찬을 총 3번 그렸습니다. 1476년경 피사냐노 수도원 버전, 1480년 오니산티 성당 버전, 1486년경 산마르코 수도원 버전이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산마르코(San_Marco) 수도원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식탁의 테이블이 로마인들이 사용했던 U형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그림 속에 갖가지 상징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니산티 성당의 <최후의 만찬>의 세부 묘사가 정교하고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평가하지만 산마르코(San_Marco) 수도원 작품이 상징적으로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기를란다요가 그린 오니산티 성당의 &lt; 최후의 만찬 &gt;을 보여주는 이미지
오니산티 성당의  < 최후의 만찬 > 1840년, 320 x 450cm

 

  기를란다요는 산 마르코 수도원의 도미니코회 수도사들로부터 식당(이탈리아어 Cenacolo)을 장식해 달라는 작품 의뢰를 받았습니다. 수도원 식당에 '최후의 만찬'을 그리는 것은 당시 피렌체를 비롯한 이탈리아에서 일반적인 관행이었습니다. 식사할 때마다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함이었을 것이지요.

 

기를란다요가 그린 산 마르코 수도원의 &lt; 최후의 만찬 &gt;을 보여주는 이미지
산 마르코 수도원의 < 최후의 만찬 > 1840년, 400 x 800cm

 

  식탁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식사하고 계시네요. 제자들의 모습은 심각해 보입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26:23)라는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겠지요. 12명의 제자들을 모두 식별하기는 힘들지만 예수님의 오른쪽에는 수제자 베드로로 보이고 예수님께 몸을 슬쩍 기대고 있는 사람은 애제자인 요한입니다.

 

  하지만 식사하는 구도가 특이하네요. 한쪽에는 예수님과 11명의 제자가 앉아 있는데, 맞은편에는 홀로 앉아 있는 제자가 보입니다. 자세히 보면 그에게만 후광이 없네요. 그는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화가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넘긴 유다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둘 수는 없어 화가가 홀로 맞은편에 앉혀놓은 것입니다. 그가 식탁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입니다. 유다의 뒤에는 고양이가 있네요. 고양이는 배반과 불신을 상징합니다.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 세 마리를 보여주기 위해 작품의 일부분을 확대한 이미지
< 최후의 만찬 > 부분 확대

 

  예수님 바로 위에 그려진 십자가는 그의 임박한 죽음을 나타내며, 오른쪽 창문에 있는 공작은 그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공작은 죽어서도 썩지 않는다는 속설에 힘입어 영원히 죽지 않는 것, 즉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 아래에는 비둘기 세 마리가 있는데, 성령을 뜻합니다. 기독교 미술에서 새는 인간의 영혼을 상징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늘을 날고 있는 새들은 죽음을 벗어나 부활하는 영혼을 상징합니다. 그 아래 레몬 나무는 독성을 제거하는 용도로도 사용되었기에 구원의 의미로 그려지곤 했습니다. 식탁 위에 빵은 예수님의 몸을, 체리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상징물은 결국 예수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구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성령의 힘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들 뒤의 벽에는 “EGO DISPONO VOBIS SICUT DISPOSUIT MIHI PATER MEUS REGNUM, UT EDATIS, ET BIBATIS SUPER MENSAM MEAM IN REGNO MEO”"라는 문구는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누가복음 2229-30)라는 라틴어 불가타 성경입니다. 이 성구는 수도원의 식당에 적합한 것 같네요.

 

  <최후의 만찬>을 묘사한 여러 화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있지만 기를란다요의 작품은 다양한 상징을 사용하여 다양한 의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성화를 통해 성만찬의 의미를 깊이 있게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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