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성화 묵상 #6 한스 홀바인 - 무덤에 안치된 그리스도(The Body of the Dead Christ in the Tomb)
지금까지 고간주간 성화 묵상으로 소개해 드린 작품들과 결이 다른 작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십자가 처형 후 무덤에 안치된 예수님의 시신을 사실주의로 묘사한 홀바인의 <무덤에 안치된 그리스도>입니다.
이 그림은 필자로 하여금 고난주간 성화 묵상으로 적합한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정도로 죽은 예수님의 처참한 모습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이런 그림은 빨리 얼굴을 돌려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합니다.
화가 홀바인 (Hans Holbein the Younger, 1497/98-1543) 은 왜 이런 작품을 그린 것일까요? 그가 작품 의뢰를 받은 것인지 아니면 또다른 이유가 있는지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홀바인의 후원자이자 바젤 대학의 교수였던 보니파시우스 아메르바흐(Bonifacius Amerbach)가 이 작품을 소유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그리스도의 시신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미술에서 예수님의 죽음은 영광스럽거나 성스러운 분위기로 묘사되지만 홀바인은 죽음의 비참함과 육체적 고통이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는 르네상스적 사실주의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체비례는 전체적으로 8등신의 비례입니다. 로마 시대 비트루비우스(Vitruvius)가 설정한 7등신의 비례를 독일의 뒤러가 이상적인 8등신으로 조정했는데, 홀바인은 8등신 인체비례를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생명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차갑고 무기력한 모습입니다. 특히 퀭한 모습으로 뜨고 있는 눈이라든가 벌리고 있는 입 등의 묘사는 죽음의 공포와 통증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보여주는 사후 시신의 모습입니다. 갈비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매우 수척하고 앙상하며, 피부는 창백함을 넘어 푸르스름합니다. 손과 발의 못자국 부위도 거무스레 변해 썩어가고 있고 창에 찔린 오른쪽 옆구리도 부풀어 썩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적어도 죽은 지 이틀과 사흘 새벽 사이의 부패된 상태를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시신은 평화로운 안식과는 거리가 먼, 죽음의 적나라한 모습입니다. 상처는 치유되거나 영광스럽게 표현되지 않고 부활과는 거리가 아주 멀게 느껴집니다.
이런 극명한 사실주의 그림은 관람자들에게 예수님의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불편함과 충격을 동시에 전달합니다. 작품의 크기도 32.4 x 202.1cm인데, 실물 크기로 묘사되어 관람객으로 하여금 마치 무덤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런 죽음의 완전한 현실성과 고통을 극복하는 부활이 더욱 위대하게 느껴지도록 의도했던 것일까요?
그림 상단에 라틴어 "IESVS NAZARENVS REX IVDAEORVM"라는 문구가 적혀있는데,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림 속의 예수님의 시신은 전혀 왕으로서의 위엄과 신성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홀바인은 끔찍한 예수님의 시신을 통해서 작품을 통해서 부활의 필요성을 절감하도록 의도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이 그림은 우리들에게 "이런 절망의 몸에서도 부활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까?"라는 질문하는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당신은 답변은 무엇입니까?
홀바인은 부활을 상징하는 암시도 엿보입니다. 예수님의 오른쪽 손을 자세히 보세요. 예수님의 세 번째 손가락이 유난히 길게 보이네요. 사람들은 가운데 손가락을 통해 모욕적인 메시지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3일’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차례 말씀하신 3일을 의미합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태 16:21)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마태 20:19)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누가 9:22)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 대”(누가 24:7)
1867년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y, 1821-1881)는 두 번째 부인 안나 그리고리예브나(Anna Grigoryevna)와 함께 스위스 바젤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이 그림을 처음 보았습니다. 안나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약 15~20분 동안 그림 앞을 떠나지 못했고, 안나는 남편이 평소 앓던 간질 발작을 일으킬까 봐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그가 스탕달 증후군(Stendhal Syndrome)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엄청난 충격과 감정적 동요를 경험한 것은 분명합니다. 참고로 스탕달 증후군이란 뛰어난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곤란, 현기증, 의식 혼란, 심한 경우 환각까지 동반하는 강렬한 정신적 충격을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치 The Idiot>라는 작품에서 이 그림에 대하여 세 번이나 언급하는 것을 볼 때 그 영향이 너무나 강렬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그림을 통해 부활을 확신하는 충격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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