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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인가, 불경인가? 엘 그레코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El Espolio> 엘 그레코가 그린 이란 작품은 불경한 작품일까요? 신성한 작품일까요? 이 작품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는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고야와 더불어 스페인의 3대 화가로 불리지만 그는 크레타섬 태생의 그리스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톨레도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수많은 명작을 남겼고, 결국 스페인의 3대 화가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본명은 '도미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인데 너무 길어 그를 ‘그리스 사람'이라는 뜻으로 ‘엘 그레코'라고 불렀습니다.    엘 그레코가 스페인으로 건너간 이유는 교황 앞에서 미켈란젤로의  자리에 더 훌륭한 그림을 그리겠다는 말로 인하여 그는 더 이상 일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도 국왕 펠리페 .. 작품소개 2025. 3. 14.
컨스터블의 건초마차: 영국 농촌의 아름다움을 담은 선구적인 풍경화 를 보았을 때 이 그림이 특별한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필자에겐 아무런 감흥이 없는 그림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명작이었다. 풍경화를 넘어서 산업혁명 당시 시대의 기록이며 프랑스 인상주의에 영향을 준 걸작이었다.   컨스터블 (John Constable, 1776-1837) 의 건초마차 The Hay Wain>는 평범한 시골 풍경을 담고 있어, 화려하지도 않고 극적인 요소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이 작품을 영국 농촌의 아름다움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생각한다. 산업혁명으로  빠르게 도시화와 기계화가 진행되던 영국 사회에서 이 작품은 농촌의 평화로운 모습을 화폭에 담아 영국인들의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풍경화의 위상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영국의 그림을 세계에 알리게.. 작품소개 2025. 3. 11.
<성화 묵상> 누가복음 24장 엠마오의 저녁식사 카라바조 카라바조는 누가복음 24장의 내용을 토대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두 제자와 엠마오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그림을 남겼습니다. 그는 두 개의 그림을 남겼는데 1606년에 먼저 그려진 작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누가복음 24장에서 두 제자는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로라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낯선 사람이 나타나 성경에 대하여 이야기를 합니다. 낯선 사람은 예수님인데 알아보지 못했지요. 그렇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부활하기 전과 달랐다는 것이네요. 날이 저물가 두 제자와 예수님은 저녁을 함께 먹게 됩니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식탁 위에서 감사 기도를 드릴 때에 두 제자가 예수님을 알아보고 깜짝 놀라는 장면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사실 실망감이 들었습니다. 젊고 위엄이 없어.. 성화소개/신약 2025. 3. 6.
브리턴 리비에르의 <공감 sympathy> "누군가 나를 공감해줘요!" 인간과 함께 1만 년 이상의 역사를 함께 한 개가 등장하는 그림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브리턴 리비에르(Briton Riviere, 1840-1920)는 동물을 그린 그림으로 큰 인기를 얻은 화가이며 그의 대표 작품은 공감 sympathy>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시대의 개는 용맹스러움의 상징이며 인간의 사냥 파트너였습니다. 한때 사냥개는 귀족의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였지요. 개는 주인에게 충성스러운 존재로서 인식되어 그림 속에는 주로 정절과 충절을 나타내는 역할을 부여하였습니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작품은 얀 판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1434>이네요. 이 작품 속에는 부부의 결합과 결혼의 가치를 상징하는 요소들이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부부 사이에 서 있는 개는 사랑과 .. 작품소개 2025. 3. 4.
화가로서의 확실한 자부심을 보여준 앙리 루소의 <자화상> 화가로서의 위상이나 자부심을  표현한 작품은 많다. 그중에 가장 확실한 자부심을 보여준 작품은 앙리 루소의 이라고 할 수 있다.  앙리 루소(Henri Julien Félix Rousseau, 1844-1910)는 가난했기 때문에 파리시 세관 공무원으로 생계를 해결하면서 화가로서의 꿈을 놓지 않았다. 주말에만 틈틈이 그림을 그렸기에 사람들은 그를 일요화가라고 불렀다. 주변 사람에게 루소는 아마추어 화가로 인식되었을 뿐이었지만 루소는 자신을 뛰어난 화가라는 확신 하였다. 독학으로 미술을 배웠고, 49세 때 비로소 전업 화가가 되었고, 죽기 몇 년 전에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첫 번째 아내 클레망스와 낳은 7명의 아이 중 6명이 죽고, 아내마저 결핵으로 사망하였고, 두 번째 아내 조세핀도 암으로 세상을 떠나.. 작품소개 2025.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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